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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역사유적지구 - 첨성대, 계림, 경주 월성, 월정교경상, 부산, 울산, 대구/관광, 교통 2020. 1. 12. 19:44반응형
저녁을 먹은 후, 경주 시내 남쪽으로 내려가 신라 시대의 문화유산들을 둘러보기로 합니다. 대형 고분 밀집 구역인 <대릉원(大陵園)>을 가장 먼저 지나가게 되었는데요. 이 날은 대릉원은 방문할 계획이 없어서 대릉원을 감싸고 있는 돌담길만 따라서 걸었습니다.
대릉원 돌담길을 따라 남쪽으로 계속 내려가면, 신라 왕궁이 있던 곳으로 알려진 <월성(月城)> 인근에 도착하게 됩니다. 월성과 그 인근 지역은 세계유산 기준으로는 <경주역사유적지구 월성지구>로 분류가 됩니다. 이 구역에는 경주 월성을 비롯하여 <첨성대(瞻星臺)>, <계림(鷄林)>, 그리고 <동궁과 월지(안압지)(東宮, 月池)> 등 신라 시대의 문화유산들이 모여있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유물을 볼 수 있는 <경주국립박물관>과 조선 시대의 고택인 <경주 최부자댁(慶州崔富者宅)>을 중심으로 최근에 조성된 <경주교촌마을>도 있지요. 월성 일대는 대부분 터와 무덤만 남아있다 보니 관광으로는 조금 볼거리가 부족하다 싶은 구역이었지만, 지금은 관광지로써의 매력도 꽤 많아진 듯 싶었습니다.
저는 먼저 첨성대를 가보기로 했는데요. 첨성대로 가는 길 우측으로는 둥글게 흙을 쌓아 만든 신라 시대의 대형 무덤들과 큼지막한 건물 터들이 보였습니다. 왕궁 바로 앞쪽이니 그에 맞는 큰 건물들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잔디와 봉토가 어우러져 텔레토비 동산 같은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조금 더 걸으니 첨성대에 도착했습니다. 10년 전에 왔을 때는 유료 입장이었는데, 지금은 무료 개방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사실 10년 전에도 큰 가림막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유료 입장하지 않아도 멀리서 충분히 볼 수 있었어요(...). 그래서 입장료는 있으나마나 한 것 같았는데 잘 바뀐 것 같습니다. 덕분에 이번 방문 때는 가까이에서 첨성대를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
첨성대는 7세기, 선덕여왕 시절에 축조된 것입니다. 예전에 방영했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도 첨성대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었던 것이 어렴풋이 생각이 납니다. 첨성대는 사용 목적에 대해 여러 견해가 있는데요. 그 중 가장 오랫동안 보편적으로 인정 받아온 견해는 천문 관측용으로 축조되었다는 견해입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도 비판이 있었습니다. 그 주된 비판점은 평평하고 낮은 평지에 높이가 겨우 9.5m밖에 안 되는 첨성대에서 무슨 천문 관측을 하겠느냐는 것이지요.
그러나 고대에서 왕이 점복 치는 행사를 하는 것과 연관시키면 첨성대의 위치는 딱히 문제가 되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일단 신라 왕이 머무는 궁궐인 월성과 굉장히 가깝습니다. 왕이 잠시 궁궐 밖으로 나와 점을 치는 행사를 하기에는 적당한 거리이지요. 그리고 고대의 천문 관측 목적은 지금과 같은 천체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국가의 길흉을 점치는 것에 있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점을 치는 것이 목적이라면 반드시 높은 곳에 천문대가 세워져야할 필요도 없게 되니까요. 이런 이유로 첨성대의 용도는 현재까지도 천문대로 보는 것이 대세입니다.
이 외에도 천문대의 구조에 대해서도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만, 이런 것들까지 다 이야기하기는 좀 그렇고요. 여행기니까 노을 지는 풍경 속에서 본 첨성대에 대한 감상을 적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경주 첨성대는 규모가 큰 것도 아니고, 화려한 장식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뭔가 큰 기대를 하고 보면 꽤 실망하게 되기도 하지요. 저도 10년 전 첨성대를 봤을 땐 그랬는데요. 이 날 해질녘의 첨성대를 보고서 아름답다는 생각을 처음 가졌습니다. 둥근 바닥에서부터 '井'자형의 꼭대기까지 층층이 쌓여있는 돌들이 만들어낸 우아한 곡선미가 붉은 노을과 어우러지니 참 곱고 예뻐보였거든요.
첨성대를 뒤로 하고 이번에는 월성 바로 북쪽에 있는 계림을 찾아가봅니다. 이곳은 경주 김씨의 시조로 알려진 김알지가 태어난 장소로 유명한 곳입니다. 숲의 전체 면적은 넓은 편은 않지만 오래된 나무들이 많은 울창한 숲으로, 아직 하늘에 해가 조금 남아있는 시간이었는데도 이곳은 금방 어두워져서 조금 음침한 분위기였습니다. 계림은 큰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첨성대와 월성, 그리고 교동마을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서 세 곳을 이동하다 보면 자연스레 지나가게 되는 곳입니다. 저도 그냥 지나가기만 했습니다 ㅎㅎ...
계림을 지나서 찾은 곳은 교동마을 앞에 놓인 <월정교(月淨橋)>입니다. 월정교라는 다리는 본래 8세기, 통일신라시대인 경덕왕 시절에 축조된 다리로, 월성 옆에 있어서 이 다리를 통해 당시의 궁궐과 남천(南川) 아래의 지역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다리는 조선시대에 와서 유실되었다고 하는데요. 최근에 이 다리를 복원하기 시작하여 드디어 2018년에 완공하였습니다.
현재의 월정교는 그 원형은 알 수 없으나 남은 일부 자료와 주변 나라의 목조 다리들을 참고해서 재현해낸 것인데요. 복원 결과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큼지막한 실물 볼거리가 생겼다는 점은 관광객들을 경주로 이끄는 요인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저도 완공된 월정교의 모습이 궁금해서 일부러 교동마을을 찾았구요 :)
제가 방문했던 2018년 여름에는, 다리만 완공된 상태였고 주변 정비가 다 끝나지 않은 상태였는데요. 그래도 임시로 개방을 해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너무 늦게 방문해서(...) 다리를 직접 걸어볼 수는 없었어요 :(
대신에 월정교 앞에 있는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월정교를 감상해보기로 했습니다. 징검다리는 월정교와 적당한 거리로 떨어진 곳에 놓여있어서, 월정교를 정면에서 감상하기에 아주 좋습니다. 2층짜리 큰 누각과 그 사이를 잇는 누교, 그리고 물에 비친 모습까지 참 화려했습니다. 저는 직접 보지 못했지만 야경도 아름답다고 합니다.
월정교를 둘러보고 다시 월성 쪽으로 돌아와 월성 안으로 들어가보기로 합니다. 이곳은 신라의 궁궐이 있었던 성으로, 신라의 궁궐은 이곳 외에도 경주시 내에 몇 군데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되지만 월성은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이용된 정궁이었다고 합니다. 주변 지역보다 약간 높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남천이라는 하천이 흐르고 있어서 요충지의 입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동, 서, 그리고 북쪽에는 흙과 돌을 섞어 만든 성벽을 쌓았으며, 성벽 아래로 인공 해자를 만들어 방어 기능을 강화시켰습니다.
그러나 신라가 멸망한지 천 년 이상이 지난 현재, 월성 내부와 주변에는 신라시대의 건물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성문도, 해자도 없고 가파른 언덕처럼 보이는 성벽만이 남아있지요. 그래도 몇 년 전부터 월성 구역에 대한 발굴이 계속 진행되고 있어서 신라 시대의 건물 유구나 유물 들은 계속해서 확인되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갔을 때에도 여기저기 발굴 작업을 하느라 땅을 파놓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발굴은 월성 내부에서도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발굴 현장을 보면서 중요한 자료들이 많이 출토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텅빈 성 터인 월성에, 그래도 역사적인 볼거리가 하나 남아있는데요. 그것은 얼음을 저장하던 <석빙고(慶州石氷庫)>입니다. 이것은 신라시대의 것은 아니고, 18세기, 영조 시절에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조선 후기에 지어진 석빙고들 중에는 규모나 기법이 우수한 편에 속하는 것이라고 하구요. 현재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석빙고를 보고 월성을 빠져나와 월성과 마주보고 서 있는 동궁과 월지로 가보기로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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