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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역사유적지구 - 공주 공산성충청, 대전/관광, 교통 2019. 8. 16. 14:17반응형
오늘은 작년(...) 여름에 충남 공주의 <공산성>에 다녀온 이야기를 포스팅해보려고 합니다. 공산성은 475년에 백제가 고구려에게 당시까지의 수도였던 한성이 함락되어 급히 수도로 정한 곳으로, 백제 시절에는 웅진이라고 불리던 곳입니다. 공산성은 이후 538년에 세 번째 수도인 사비(현재의 부여군)로 천도하기 전까지 63년간 백제의 수도 역할을 하였지요. 지금 사용하는 공산성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 이후에 사용하게 된 명칭이라고 합니다.
사실 공주는 공산성 외에도 무령왕릉과 같은 백제의 다른 문화유산도 있고요. 마곡사, 갑사 등 유명한 사찰들도 있는 등 볼거리가 꽤 많은 도시인데요. 이 날은 친척집이 있는 대전에 갔다가 잠깐 짬을 내어 공주에 다녀온 것이었어서, 시간상 공산성 한 곳만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공산성은 최근에 인근의 부여, 익산의 백제 유적들과 함께 '백제역사유적지구'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학부 답사 때 공산성을 한 번 방문해본 적이 있는데, 이번에 거의 10년 만에 재방문하게 되어 약간의 추억을 회상하는 여행(?)을 가는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
유성 시외버스 정류소에서 공주행 티켓을 구입했습니다. 요금은 3,100원. 처음 방문해본 이 정류소는 중간 정차하는 정류장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큰 편이고, 그렇다고 시외버스 터미널이라고 하기에는 내부 시설 및 승하차장 공간이 좁은 편이었습니다. 좁은 공간에 이용하는 사람도 많고, 드나드는 버스들도 많아서 조금 정신 없는 편이었습니다. 그래도 무사히 탑승.
터미널을 출발한 버스는 약 30분 정도 달려 공주 시내에 진입하였습니다. 사진 속 보이는 강이 금강이고, 그 좌측으로 보이는 산이 공산성입니다.
공주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공산성 근처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약 10분 정도 이동. 현재 공산성 관광의 메인 출입구라 할 수 있는 서문인 금서루(錦西樓)로 향했습니다. 참고로 본래 공산성의 메인 성문은 남문인 진남루(鎭南樓)와 북문인 공북루(拱北樓)라고 합니다. 남문의 경우에는 공주 시내에서 진입할 수 있는 성문이고, 북문은 금강을 향해 서 있어서 성문을 나오면 배를 타고 강 건너편으로 건너갈 수 있는 형태입니다. 진남루와 공북루 모두 이번 방문 때 가보았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공산성 맞은 편 길에는 공주의 또 다른 백제 문화유산으로 잘 알려진 무령왕릉의 벽돌 무덤 양식을 본 따 만든 것으로 보이는 문이 서 있고, 그 앞으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도시 공주' 라고 새겨진 비석이 있었습니다. 이곳이 공주 역사 문화 여행의 출발점 같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저는 그 맞은 편에 서 있는, 오늘의 목적지인 공산성으로 향합니다. 성으로 오르기 전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 입장료는 1,200원입니다.
공산성은 시가지 바로 옆에 서 있는 성이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당시 백제가 고구려의 공격으로 한성이 함락되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급히 정한 수도였기 때문에 지세가 꽤 험한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메인 출입구로 이용되고 있는 서문 또한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서문을 올려다보면 쉽게 진입하기 어려운 요새다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서문으로 들어가기 전 공산성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성 내 주요 시설물의 위치가 표시된 안내판이 서 있습니다. 이곳에서 오늘의 대략적인 동선을 재확인하고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저는 서문에서부터 북문을 지나 북동쪽의 성벽에 이르기까지는 성벽을 따라 걷고, 그 뒤로는 성 안으로 통하는 길을 따라 남문 및 추정 왕궁지까지 둘러보고 다시 서문으로 돌아나오기로 했습니다.
서문의 누각인 금서루.
이곳에 오르면 공주의 시가지가 보입니다. 그 뒷편으로 보이는 산에는 무령왕릉을 비롯한 백제 시기에 조성된 고분들이 모여 있는 송산리 고분군이 있습니다.
이제 성벽을 따라 걸으며 북문으로 향합니다. 사진은 북쪽 성벽을 따라 조금 걸은 뒤에 찍어본 서문의 모습이에요.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공산정(公山亭)이라는 이름의 2층 누각이 보입니다. 관람객들이 직접 올라가볼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는 곳인데요.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금강과 공산성 전경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올라가서 잠시 쉬면서 전경을 감상해볼까 싶었지만, 시간이 많지 않은 관계로 전망대에 오르지 않고 열심히 걷기로 했습니다(...).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금강과 이를 가로지르는 금강교가 보입니다. 이 다리는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개통된 것인데요. 그 후 6.25 전쟁 중에 상당 부분 파괴된 것을 1956년에 준공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지어진 다리라 그런지 폭이 좁아 현재는 일방 통행으로만 운영 중이라고 합니다.
금강교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에 도착했습니다. 1603년, 본래 이 자리에 있던 망북루(望北樓)를 고쳐 지으면서 공북루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현재의 건물은 1960년대에 보수한 것입니다. 이 누각은 윗층에는 누마루를 두고, 아래층에 통행로를 두었는데요. 아래 통행로를 따라 내려가면 금강에 도달하게 됩니다. 지금처럼 금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없던 시절에는 이 문을 지나 배를 타고 금강을 건너갔다고 합니다.
이 사진은 공산성 관람을 끝낸 후, 버스 타고 돌아가는 길에 찍은 사진이에요. 강 건너편에 보이는 문루가 공북루입니다. 강과 산에 둘러싸여 쉽게 함락시키기 어려운 성의 모습이지요. 맞은 편에서 보는 게 조금 더 멋있(?)습니다. ㅎㅎ 공북루 바로 뒷편은 꽤 넓은 평지도 있는데요. 조선시대에는 군영이 있던 자리인데, 구한말에 군영이 기능을 상실하면서 그 자리에 마을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성안 마을이라고 불렸는데, 마을은 구한말 이전에도 있었다고 합니다.
공북루 근처에는 1915년에 만들어진 잠종냉장고(蠶種 冷藏庫)도 남아있습니다. 누에의 먹이가 되는 뽕잎이 자라는 시기에 맞춰 누에의 부화 시기를 늦추기 위해 겨울철에 금강의 얼음을 채취하여 이곳 냉장고에 넣고 낮은 온도를 유지시켜 누에의 부화 시기를 늦추었다고 합니다.
공북루와 잠종냉장고를 지나 성곽을 따라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가면, 아래로 누각과 깊은 연지가 보입니다. 우선 좌측에 보이는 누각은 만하루(挽河樓)라고 불리며, 1754년에 세워졌습니다. 보통의 누각들은 풍류를 목적으로 지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에 비해, 이 누각은 공산성 동쪽 성벽 높은 위치에 세워져 있어서 풍류보다는 군사적 기능을 위해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만하루 바로 옆에 있는 연지는 백제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이후 조선시대까지 계속 사용되었다고 하는데요. 연지 안쪽으로는 석축을 단을 두어 쌓았으며, 아래로 내려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형태입니다. 여기에 계단까지 만들어져 있어서 연지의 바닥 부분까지도 사람이 내려갈 수 있습니다.
만하루와 연지 뒷편으로는 영은사(靈隱寺)라는 작은 사찰이 있습니다. 창건 시점은 명확하지 않고, 백제, 고려 초기, 조선 세조시기 등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조선 세조 시기 이래로 묘은사(妙隱寺)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하는데요. 이후 1624년 이괄의 난이 발생했을 때, 당시 임금이었던 인조가 이 절로 피난을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때 절의 이름을 지금의 영은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으며, 승병들을 계속 주둔하게 하여 호서 지역의 대표적인 호국 사찰이 되었다고 합니다.
작은 사찰이라 건물이 많지 않으나, 그 중 대표적인 건물은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51호로 지정된 원통보전입니다. 이곳에는 관세음보살상이 봉안되어 있고, 그 뒤로 19세기 말에 그려진 후불탱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다시 성곽을 따라 걸어봅니다. 공산성의 북쪽 성곽은 오르막길, 내리막길이 많아 더운 여름에는 걷기 꽤 힘들었어요(...). 그래도 좌측으로 보이는 금강의 풍경과 파랗고 맑은 여름 하늘 덕분에 기분은 상쾌했습니다. 강 북쪽은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신시가지라서 그런지 강 아래쪽 시가지의 풍경과 비교해보면 고층 아파드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계속 성곽을 따라 걷다가 성 안쪽으로 들어가는 갈림길이 나와서 여기에서부터는 성 안쪽으로 들어가 걷기로 했습니다. 울창한 숲길이라 그늘진 곳도 많고 공기도 맑아서 걷기 좋았습니다 :)
성 안으로 들어와서 찾아간 곳은 건물터만 남아있는 12각 건물지였습니다. 12각 형태의 둥근 건물 2채가 있던 자리였다고 하는데요. 보는 눈이 없어서 그런지 건물터 구분이 잘 안 가더라구요(...). 여튼 이 자리에 있던 건물에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출토 유물들은 대개 8-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것들이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공산성의 남문인 진남루. 지금은 서문이 정문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이 문이 정문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이 문을 지나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가면 공주 구시가지에 도달하게 돼요.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웅진 시대 백제의 왕궁으로 추정되는 건물지들이 있는 구역이었어요. 이곳에는 추정 왕궁지 외에도 앞에서 언급했던 이괄의 난과 관련된 역사적 유산도 남아있습니다. 위 비석은 쌍수정사적비(雙樹亭史蹟碑)라는 이름의 비석으로, 1708년에 제작되었습니다. 비석에는 이괄의 난 때 인조가 공산성으로 피난온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그 옆으로는 쌍수정(雙樹亭)이라는 정자가 남아있습니다. 1624년 이괄의 난으로 공산성으로 피난 온 인조는 성 안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위치한 두 그루의 나무에 기대어 난이 진압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러던 중 반란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서 두 그루 나무에 벼슬을 내리고(!) 성 이름을 쌍수산성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이 때의 일을 기념하기 위해 1734년에 삼가정(三架亭)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정자를 지었고, 이후 1903년에 정자를 다시 세우면서 지금과 같이 쌍수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현재의 정자는 1970년대에 해체, 복원한 것입니다.
쌍수정 사적비 앞으로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는데요. 이곳이 백제 추정 왕궁지 및 건물지입니다. 한쪽 구석에는 꽤 큰 연못도 있습니다. 규모가 그리 작지 않아서 왕궁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왕궁 치고는 규모가 작아서 이곳이 왕궁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이견도 있다고 합니다. 한성이 함락되고 난 직후에 피난와서 세운 수도니까 임시 수도(?)마냥 급하게 세웠을 수도 있으니 규모가 작은 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 합니다만, 뭐... 확실한 근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계속 여러 견해가 나오겠지요.
추정 왕궁지를 지나 다시 메인 입구인 서문으로 돌아오는 길. 여름이니 덥기는 했지만, 그래도 날씨가 너무 맑고 공기도 깨끗해서 눈과 코가 정화되는 기분이 드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이것으로 공산성 답사를 마무리합니다.
※ 공주 공산성 정보
주소: 충남 공주시 웅진로 280
찾아가는 방법: 버스 정류장 공산성(산성시장/신관동/무령왕릉 방면 세 곳 존재)에서 하차, 도보 2분.
관람시간: 09:00-18:00
입장료: 1,200원
전화번호: 041-840-2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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