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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 상설전시 - 신라역사관, 성덕대왕신종, 고선사지 삼층석탑경상, 부산, 울산, 대구/관광, 교통 2023. 3. 19. 20:06반응형
이 글은 이전 포스트(아래의 링크)에서 이어지는 글이에요.
#동궁과월지 (東宮과 月池) 관람 후, 이어서 #국립경주박물관 에서 전시를 관람하기로 했어요. 동궁과 월지 입구에서 5분 정도 걸으면 국립경주박물관 입구에 도착합니다. 입장료는 무료였어요.
국립경주박물관은 국내 각지에 있는 국립박물관 중에서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다음으로 소장 유물이 많은 박물관이라 경주에 오면 꼭 가볼 곳 중 한 곳인데요.
지난 번(2018년 여름) 경주 여행 때는 박물관에 가질 못해서 이번에는 방문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포스트에서는 국립경주박물관의 상설전시관 중 일부인 신라역사관과 옥외전시 관람 후기를 소개하려고 해요.
상설전시관으로 들어가기 전, 맞은 편에 서 있는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부터 보고 가기로 합니다.
통일신라 혜공왕 7년(771)에 완성된 종으로, 성덕왕을 기리기 위해 주조한 것입니다. 본래 경덕왕이 자신의 아버지(성덕왕)을 기리기 위해 주조하기 시작한 것이나, 종이 완성되기 전에 경덕왕은 죽고 그의 아들 혜공왕대에 종이 완성되었어요.
이 종은 전근대에 국내에서 제작된, 현존하는 범종 중 가장 큰 종으로도 유명하고요. 1962년에는 국보 제 29호로 지정되어 가치도 인정 받은 소중한 문화유산이지요.
종에는 성덕왕의 업적을 칭송하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서, 성덕왕을 찬양하면서 그 후손인 경덕왕과 혜공왕의 왕권 강화를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혜공왕이 시해되면서 신라 왕권은 서서히 아래로 떨어져갔지만요...
완성된 종은 본래 북천에 있었다고 하는 봉덕사(奉德寺)에 걸었으나, 조선 시대에 북천이 크게 범람할 때 절이 수몰되면서 종은 영묘사(靈妙寺)라고 하는 절에 이전되었다고 합니다. 이후에는 경주읍성 남문 앞에 종각을 짓고 그곳에 걸어 사용하다가 1915년에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고, 그 이후로는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시되어 있는 종이라 타종은 안 할 것 같아보이지만,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가끔 타종을 했다고 합니다. 현재는 보존을 위해 타종을 멈춘 상태인데요. 대신에 녹음된 성덕대왕신종 종소리가 매시 정각, 20분, 40분에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집니다. (여행 다녀온지 3년이 지난 2021년에 성덕대왕신종 완성 1250주년 기념으로 타종을 했다고 합니다.)
종 맞은 편에는 커다란 전시관이 있는데요. 여기가 메인 전시관인 '신라역사관'이 있는 곳이에요. 이 날은 여기만 집중적으로 관람하기로 했습니다.
신라역사관은 총 네 개의 전시실로 구성이 되어 있었습니다. 전시실은 신라 역사의 흐름을 따라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는데요. 일부 전시실은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아쉽게도 전체 전시실을 관람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최근(2022년)에 다시 방문했을 땐 전체 리모델링이 다 끝났는지, 전체 관람도 가능했고 내부 분위기가 상당히 많이 바뀌었더라고요. 최근에 재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들은 나중에(...)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제 1 전시실은 구석기시대부터 5세기 말 신라가 고대국가 체제를 갖추기까지의 기간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경주 일대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들을 통해 이곳에서 어떻게 신라라는 나라가 탄생하고 성장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지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유물인 반달돌칼이 여러 개 전시되어 있고,
철로 만든 목가리개와 허리가리개를 비롯하여 철검, 덩이쇠 등 철제 유물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신라인들의 무덤에서 출토된 접시나 항아리에는 사람이나 동물 모양의 토우(土偶)가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요. 이 토우들을 한데 모아 놓으니 뭔가
하찮게 생겨서귀엽습니다 ㅎㅎ 토우들은 대략 10cm 정도의 크기에 모양이 좀 단순하고,하찮고,엉성하게 생겼지만 사실적인 묘사가 특징적입니다.반응형제 1 전시실 나가기 전에 있던 경주 교동 금관. 지름 14cm, 높이 12.8cm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신라 금관에 비해서는 크기도 작고, 무늬도 새겨져 있지 않아 살짝 소박한(?) 느낌인데요. 이 금관의 제작 연대는 5세기로, 초기 마립간 시기에 해당됩니다.
이 유물을 제 1 전시실 끝에 배치함으로써 경주 일대의 작은 사회가 서서히 성장하여 금 장신구를 사용하는 지배자들이 다스리는 고대 국가로 발전하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고대 국가로서 발전하는 마립간 시대의 신라를 보러 제 2 전시실에 가려는데, 에구야... 제 2 전시실은 공사 중이라 관람이 불가했습니다 ㅠㅠ 이곳은 어쩔 수 없이 패스...
제 3 전시실로 넘어가려는데, 중간에 '신라의 미소'로도 유명한 얼굴무늬 수막새가 홀로 전시 중이었습니다. 왜 따로 나와있나 하고 봤더니, 이번(2018년 11월)에 보물로 지정되었다며 특별히 따로 전시 중이었던 것이었어요 ㅎㅎ
수막새란 목조건물 지붕의 기왓골 끝에 사용한 기와를 가리키는데요. 보통은 (교과서에 많이 수록되어 있듯이) 연꽃무늬를 틀로 찍어내서 제작을 하는데, 이 기와 조각은 손으로 직접 빚어 얼굴 무늬를 새긴 것이 특징적입니다.
하단 부분이 떨어져 나간 상태인데, 오히려 그래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 되었지요. 경주시 곳곳에서 이 무늬를 활용한 이미지가 사용되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을 만큼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것이기도 합니다.
이 유물은 일제강점기 시기에 경주 영묘사 터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1934년 경주에 살고 있던 일본인 다나카 도시노부(田中敏信)가 골동품점에서 이를 구입하여 일본으로 반출했다가(...), 1972년에 조건 없이 국내로 환수된 유물입니다.
천만다행제 3 전시실은 지증왕대 이후부터 통일신라기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었어요. 이곳에서는 교과서나 책에서 보던 유물들을 여럿 볼 수 있었습니다.
먼저 위 비석은 이차돈 순교비로, 신라의 불교 공인의 역사를 담은 비석이었습니다.
본래 신라는 귀족들이 각자 조상신을 믿거나 유명 산천을 모시는 등 토착 종교만 있었을 뿐, 국가 전체를 아우르는 고등 종교는 부재했는데요. 이 상황은 고구려와 백제가 불교를 수용한 4세기 후반 이후에도 지속되어, 신라는 6세기에도 불교를 공인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보수적인 귀족들의 반대가 심했기 때문이지요.
그런 상황에서, 법흥왕 대에 이차돈이 순교하여 흰 피가 나오는 이적이 나타나자 더 이상 귀족들이 반대하지 못하여 528년 드디어 불교를 공인하게 됩니다. 이제 신라도 중앙집권적 국가에 어울리는 종교를 수용하게 된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전국민이 불교를 믿던 9세기 초 통일신라에서, 이차돈의 순교를 기리기 위한 비석을 경주 소금강산에 위치한 백률사(栢栗寺)에 세우게 됩니다. 그것이 지금 박물관에 옮겨져 전시 중인 이차돈 순교비입니다.
그렇다면 왜 백률사에 이 비석을 세웠는가 하는 궁금증이 남는데요. 그것은 이차돈의 목을 쳤을 때 그 목이 산으로 날아갔는데(...) 그 위치에 지은 절이 백률사이기 때문입니다. 즉, 백률사는 이차돈을 기념하기 위한 사원이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백률사도 한 번 가보고 싶은데, 어째 경주에 갈 때마다 다른 곳만 방문하고 옵니다 ㅠㅠ... 경주는 볼 게 너무 많은 동네에요 ㅎㅎㅎ
신라인들이 유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도 전시 중이었습니다. 교과서에서 사진으로 보면 엄청 작은 돌맹이(...)같이 생겼는데요. 실제로 보면 길이 약 30cm로 생각보다 큽니다.
임신서기석이라는 이름은 임신년(壬申年)에 서약하여 기록한 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요. 신라 청소년들이 유교 경전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맹세하는 내용의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요즘 애들도 시험 기간이 되면 SNS 스토리에 '이것, 저것 언제까지 다 풀고 이번 시험 평균 90점 넘을 것임' 이런 식으로 공개적인 맹세(?)를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요. 그런 것과 약간 비슷한 느낌의 비석이에요 ㅎㅎ
비문이 제작된 시기는 학자에 따라 견해가 다르지만 대체로 삼국 통일 이전인 552년 또는 612년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재 이 비석은 보물 제 1411호에 지정되어 있습니다.
신라의 삼국 통일에 큰 업적을 세운 김유신의 묘에서 출토된 유물도 전시 중이었습니다. 이것은 김유신묘의 둘레에 세운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 중 하나인데요. 돼지를 묘사한 것입니다.
김유신묘의 경우 그의 업적 때문인지 무덤 크기가 신라 왕릉에 비견할 정도로 큰데요. 봉분 주위에 신라 왕릉에서 쓰이는 양식으로 둘레돌을 세워두었습니다.
그 둘레돌 중에 이와 같은 십이지신상이 함께 세워져 있던 것이지요. 차이가 있다면 다른 왕릉의 십이지신은 갑주무장상(甲胄武裝像)을 하고 있는 반면에, 김유신묘의 십이지신은 평복에 무기를 들고 있는 점이 다른 점이라고 합니다.
마지막 제 4 전시실은 신라의 융성과 멸망을 주제로 통일 이후 유물을 전시한 곳이었습니다.
신라가 망한지 1,100여 년이나 지나서 현재 경주에는 통일 신라 당시의 모습을 온전히 가진 장소를 찾기가 어려운데요. 통일 이후 번영했던 서라벌의 모습을 재현한 미니어처가 있어서 이것으로나마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었습니다.
경주 교동에서 발견된 사자상은 꼿꼿하게 서 있는 모습이 늠름한 인상을 주었는데요. 통일 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본래 어디에 위치하고 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발견 지역이 교동이라 신라 궁궐과의 관련성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합니다.
요 공간은 별도로 2018년 특별 전시 '사천왕사 녹유신장상, 백년의 기다림'이라는 이름의 전시가 진행 중인 곳이었어요. 경주 사천왕사(四天王寺)는 본래 일제강점기였던 1918년부터 조선총독부에서 발굴을 시작하였으나 본격적인 발굴을 하지는 못한채 신장상(神將像)을 파편으로만 수습했는데요.
2006년부터 2012년까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정밀 발굴을 실시한 결과 출토된 신장상은 사천왕사의 동·서 목탑 기단부의 벽전(甓塼)임을 밝혀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전시를 통해 녹유신장벽전을 결합, 복원하여 대중에게 공개하는 자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국립경주박물관 신라미술관에 전시 중)
녹색의 유약을 입힌 벽돌이라 색감도 특이하고, 섬세한 조각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경주 남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南山 長倉谷 石造彌勒如來三尊像)은 경주 남산에 있었던 불상들인데요. 7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자세를 하고 있는 본존불과 작은 크기로 아기자기한 귀여움을 가진 좌우 협시보살들이 어우러져, 성스러우면서도 천진난만한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삼존불이었습니다.
제가 보러 갔을 땐 보물로 승격되기 전이었으나, 2020년에 이 삼존상은 보물 제 2071호에 지정되었습니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동리에는 9세기에 제작된 삼층 석탑 두 기가 있다고 하는데요. 그 중 동탑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흙으로 만든 99개의 소탑이 들어 있었는데요. 흙탑들을 가지런히 나열해놓은 모습이 예뻐서 찍어봤습니다 ㅎ
마지막은 국은 이양선(菊隱 李養璿)의 기증품이 전시된 곳을 둘러봤습니다. 이양선 선생은 평생에 걸쳐 수집한 문화재 666점을 국립경주박물관에 기증했다고 하는데요. 이곳에서 본 유물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도기 기다인물형 뿔잔이었습니다.
5세기에 가야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로, 가야가 남긴 대표적인 토기 중 하나입니다. 말의 몸체에는 직사각형 모양의 판을 엮어 만든 갑옷이 입혀져 있고, 말 등 가운데에는 갑옷을 입고 무기와 방패를 든 무사가 앉아 있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말의 등 뒤쪽에 좌우 대칭으로 뿔 모양의 잔을 달아두었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예쁘다고 느낄 만큼 섬세하게 조각된 모습이 인상적인데다가, 보존 상태도 좋아서 당시 가야의 토기 제작 기술과 가야 무사의 모습을 파악하기에 좋은 문화유산이라고 합니다. 그 가치를 인정 받아서 1993년 국보 제 275호에 지정되었지요.
실내 전시 관람을 끝내고 나와서, 마지막으로 박물관 뒷편에 있는 옥외전시장 한 켠에 서 있는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高仙寺址 三層石塔)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이 탑은 원래 경주시 암곡동에 있는 고선사지에 있었던 것이라고 하는데요. 1975년에 완공된 덕동댐으로 인해 덕동호수라는 인공호수가 생겨나면서 절 터는 수몰되었습니다. 그 전에 탑은 박물관으로 옮겼다고 해요.
2층으로 된 기단 위에 3층으로 탑을 세운 전형적인 통일신라의 삼층석탑인데요. 높이는 대략 10m 정도로 크고, 어딘가 육중한 느낌을 줍니다.
비례가 완벽해서 통일신라 3층 석탑의 완성형태로 불리는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에 비해서는 조금 둔한 느낌이 있더라고요.(불국사 관람 후기는 아래의 링크 참고) 이런 점 때문에 고선사지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초기에 제작된, 초기 삼층 석탑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 탑이 본래 서 있던 자리가 물에 잠겨버렸다는 사실과 쓸쓸한 가을 바람이 더해지니 뚠뚠하게 생긴 석탑을 보고 있는데도 왠지 모르게 연약해보이고 외로워보이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렇게 상설전시관인 신라역사관과 옥외전시 일부를 둘러보는 것으로 국립경주박물관 관람을 끝냈습니다.
메인 전시관 외에 다른 전시실까지 둘러보려면 정말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할 만큼 정말 볼거리가 많은 박물관입니다. 경주 여행 가면 꼭 방문하시길 추천합니다 :D
※ 국립경주박물관 정보
주소: 경상북도북 경주시 일정로 186
찾아가는 방법: 경주 버스 10, 11, 600번 버스 등 탑승, 버스 정류장 #국립경주박물관 에서 하차
관람시간: 10:00-18:00(토요일, 공휴일은 19:00까지)
휴관일: 1월 1일, 설날, 추석, (임시 휴관일: 3월, 11월 첫째 월요일)
입장료: 무료
전화번호: 054-740-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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